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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평범하고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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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던 곳으로 걸어가면 돼?'

'맞아!'

 

몇 번이나 갔다고 어느새 익숙해진 그 거리를 오늘도 간다. 미세먼지 대문인지 땅에서 가까운 하늘은 조금 흐릴지 몰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면 미세먼지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파란 하늘이다. 이제는 제법 따뜻해진 날씨 덕에 새로 산 신발과 조금은 얇은 셔츠를 차려입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전에 했던 꽃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왔다. 집 앞의 예쁜 꽃집에서 꽃을 사 가고 싶었지만 지하철 안이 너무 더워서 꽃이 시들 해질까 봐 그녀의 집 근처 꽃집으로 가기로 한다. 

 

그녀가 도착하기 30분 전 그녀의 집 근처에 있다는 꽃집으로 향했다. 당황스러웠다. 포털사이트 검색만 믿고 간 곳에는 빈 상가만 덩그러니 있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재빠르게 다른 꽃집을 찾아본다. 

어느새 그녀가 도착하기 10분 전 후다닥 뛰어서 사거리 건너의 큰 건물에 도착한다. 2층에 꽃집이 있다고 하는데 막상 2층으로 올라가니 공사 중인 빈 상가만 있었다. 망했다. 결국 뭐 하나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녀를 맞이한다.

 

이미 도착한 그녀가 저 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긴 머리와 마른 몸이 예쁜 그녀가 보인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가 어쩐지 더 잘 어울리는 그녀이다. 멀리서 나를 보고 웃는 그녀. 걸어오는 모습만 보고도 나인걸 아는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벌써 밝다. 내가 준 옷을 입고 나를 보고 밝게 웃는 그녀를 보니 새삼 고맙다. 예쁜데 나를 좋아해 줘서.

 

'망했어'

'왜?'

'약속을 지키려고 했는데 못 지켰어. 꽃집이 다 없어'

'괜찮아. 오빠는 진자 서프라이즈는 못하겠다.'

'왜?'

'오늘따라 일찍 나왔네? 뭘 하려고 하나? 전에 꽃 사준다고 해서 그런가? 꽃을 가져오겠구나!'

'다 알고 있었네..'

'ㅋㅋㅋㅋㅋ'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준 것이었다. 항상 실패하는 서프라이즈이지만 언젠가는 성공한다 두고 봐. 내 손을 곡 잡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그녀와 함께 미리 정해둔 고깃집으로 향한다. 전에 그녀가 회식에서 삼겹살을 여자분들끼리 20인분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전설의 장면을 오늘 재연해보기로 했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에 맥주 한 잔. 술을 잘 못하는 그녀는 한 잔을 나눠서 마시지만 조금의 알코올로도 충분히 온몸이 붉어진다. 작은 입으로 야무지게 쌈을 싸서 먹는 모습이 귀엽다. 작은 토끼 같기도 하고 새끼 고양이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데려다 키우고 싶다는.. 에헴.

 

밥을 다 먹고 그녀에게 꽃도 사줄 겸 냉장고도 조금 채워줄 겸 마트로 향한다. 마트 1층의 꽃집을 알기에 쇼핑을 한 뒤 꽃을 사러 오기로 한다. 아침에 먹을 해쉬브라운과 블루베리를 사고 내려오니 이럴 수가. 8시가 10분 넘은 시간인데 그새 꽃집이 문을 닫아버렸다. 난 왜 항상 이런 식인지 다음엔 절대 나를 믿지 말자.

 

집으로 돌아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분위기의 노래도 들으면서 우리는 또 서로에게 빠져든다. 가만히 앉아서 내 어깨에 기대고 그녀의 품에 안기고 그런 행동들을 반복하며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 품에 안고 있어도 더 꼭 끌어안아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도 부족한 지금이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대단한 레스토랑도 선물도 없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바라만 봐도 웃을 수 있었고 손만 잡고 걸어도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 예뻐 보이는 하루. 아무 말하지 않고 노래만 들으며 시간을 보내도 그 시간들이 특별한 순간들. 서로에게 푹 빠져 가장 가까이 있지만 더 가까이 붙어있고 싶은 우리.

 

이런 하루에 끝에 그녀와 함께 할 수 있고 그녀와 사랑을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나를 보며 웃어줄 그녀와 함께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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