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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센스있는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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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휴일을 맞이한 어느 날. 한가로운 휴식을 취하고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간단히 배달앱을 통해서 저녁메뉴를 고르고, 그 시간을 아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메뉴가 뭐가 중요하겠나 그저 같이 있는게 중요한 지금이지. 

 

우리의 첫 시작은 2월 14일로 정해졌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의미보다는 우리의 시작일에 더 초첨을 맞추고 싶다. 이 날부터 나는 나와의 시작을 허락해 준 그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싶었다. 마침 한 달 뒤인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라 불리운다. 주로 사탕을 주고 받는 날이지만, 다 큰 어른이 고작 사탕으로 선물을 주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사탕보다는 초콜렛을 더 좋아하기에 ... 뭐 그런 이유로 그녀를 위한 선물을 찾아보고 있었다. 평소 그녀와 향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나는 향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녀도 향에 민감하다는 말을 했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센스있는 게다가 향까지 매력적인 향수라는 아이템을 선택하려했다. 

 

'이거 뭐야?'

'아 이거 선물받았어'

'아...'

 

심각했다. 그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향수를 찾아보던 나였지만 여성용 향수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라 아무 정보도 없는 나는 막막했다. 유투브며 구글이며 모든 매체를 사용해서 검색을 시작했다.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왠지 그녀가 사용하는 지갑이 디올이라서, 왠지 이 병의 디자인이 화이트베이스인 그녀의 집에 어울릴 것 같아서, 왠지 그녀의 길고 파마를 한 머리카락에 잘 어울릴 것만 같아서 선택한 아이템 디올 헤어미스트가 눈에 들어왔었는데.... 내가 일주일 간의 길고 긴 고난의 끝에 발견한 그 아이템을 이미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그녀였다.

 

'왜?'

'아 아냐..'

'..?'

'아니.. 사실은...'

 

너무나도 막막한 마음에 그녀에게 선물을 사줄 계획과 선택한 아이템이 이것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나는 막막함에 울분을 토했지만, 착한 그녀는 같은 것도 괜찮다고 했다. 후...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아직 3월 14일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출근을 해서도, 퇴근을 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그녀의 선물을 고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에 향수 브랜드는 왜이렇게 많은건지. 게다가 언제 가서 다 맡아볼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다. 최근 모듈가구를 구입한 나이기에 내 가구를 본 동네 형아들이 이거 한 번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빠르게 그들과 연락을 해서 모듈가구 만들기를 위한 설계와 주문까지 한 번에 해버렸다. 나는 그녀의 책상에 올릴 작은 사이즈의 화장대용도의 선반 같은 것을 만들기로 했다. 

 

게다가 유투브의 힘을 빌려 찾아낸 또 하나의 선물 바로 바이레도 - 라튤립 이라는 향수. 이로서 화룡정점을 찍겠다고 다짐했다. 선반과 함께 바이레도 향수로 마무리. 내가봐도 너무 완벽했다. 

 

문제는 나였다. 그녀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그녀가 새로운 선반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발단이었다. 조금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말해선 안될 것을 말해버렸다.

 

'요즘 우리 집에 있는 그런 형태의 가구를 직접 만들 수 있다더라고!'

'아정말?'

 

흠칫했다. 되게 솔깃해하며 들어버린것 같았다. 그래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잘 설명해줬다. 적어도 내가 만들어 준 모듈가구를 먼저 보고나서 필요하다면 같이 만드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그러면 돼...

 

'나 사실 정했어'

'뭘??'

'모듈가구 만들려고'

'어...어??'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나는 정말 입이 문제다. 서프라이즈라고는 1도 못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그녀는 모듈가구를 나보다 먼저 조립했다. 괜찮아...아직 향수가 남았다.

 

그렇게 약 D-DAY까지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 근무를 하는 중 그녀와 틈틈히 연락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수원역 왔어!'

'뭐 보려구~?'

'딥티크 가보려구!'

 

싸늘하다...

 

'베티베리오 퍼퓸이 한국에 들왔대...'

'베티베리오가 한국에 왔구나....'

 

와 이건 정말 위험하다. 지금 이런 대화를 하고 일주일 후에 향수를 딱 꺼냈는데? 뭐야이건 바이레도? 난 분명 딥티크를 말했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수 많은 고민을 했다. 기다려 말아? 시작은 화이트데이에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주는 남자친구였지만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센스라고는 전혀없는 여자친구 말도 제대로 안듣는 남자친구가 되기 딱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그녀가 나를 반겼다. 그녀의 옆으로 커다란 야자수 같은 녀석이 우리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이게 뭐야..?'

'오빠 집에 필요한 것 같아서 샀어!'

'와... 예쁘다..'

 

떡갈 고무나무도 예뻣지만 웃으면서 날 위해 사왔다는 그녀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좋아할 내 모습을 생각하며 골랐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너무나 고마웠다. 

 

고무나무를 반기고 나니 소파 앞에 딥티크 쇼핑백이 떡하니 나를 맞이했다. 떨리는 맘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 뭐 샀어..?'

'응! 거기 판매하시는 분이 너무 열심히 설명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하나 샀어!'

 

낭패다. 진짜 이제 내가 준비한 모든 선물을 그 값어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하... 어쩔 수 없다. 이건 당장 꺼내고 빌어보자. 어떻게든 센스있는 남자친구 타이틀 조금이라도 지켜보자.

 

'후...뒤돌아봐봐'

 

잠시 다른 곳을 보게 한 뒤에 준비한 향수를 꺼낸다. 

 

'이게 뭐야?'

'사실...'

 

수 없이 많은 고뇌와, 많은 시련, 그리고 많은 좌절들이 가득한 이야기를 슬그머니 풀어냈다. 발렌타인 데이에 선물하나 못받았다는 이야기 듣게 하기 싫었다고. 센스있게 우리의 시작을 기념하는 선물 하나쯤 해주고 싶었다고. 그런데 점차 내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다고.

 

'고마워'

 

순식간에 언박싱을 끝낸 그녀가 고맙다 말해준다. 그 한 마디 말에 모든 피로가 풀린다. 웃고있는 그녀 얼굴을 보니 내 선물의 값어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한다. 

 

'약간 비누향이 좀 나면서 점점 꽃 향이 나!'

'오 이거 향 좋다. 생화 향기가 나!'

 

다행이다. 나와 그녀 모두 만족한 것 같다. 향에 예민한 그녀이기에 많이 걱정했다. 게다가 이전에 선물에 관해 이야기를 했던 터라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을 하는 것 보다 미리 말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이야기했던 그녀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재고가 없어서 해외배송으로 시켰는데,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조차 어려워 그녀에게 혼이 날까 노심초사했었다. 

 

결과적으로 향수는 이미 그녀에게 전달됐고, 모듈가구는 다 만들어서 그녀에게 공개되었다. 당장 다음 주 주말에 그녀가 받을 선물은 이미 다 알고있는 선물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기대하고 즐거워하고있다. 어쩌면 센스있는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을 너무 신경썼던 건 나 뿐이었을 수 있다. 그저 그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 것 만으로 그녀는 웃는 얼굴과 이런 칭찬 저런 칭찬으로, 나를 너무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이러니 내가 선물을 못끊지.

 

고마워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너 보라고 쓴 글이야.

많이 부족하지만 더 많이 노력할게. 

당장의 설렘과 넘치는 열정으로 너를 대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참아가며 훗날에 더 큰 기대를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어볼게. 

표현은 많이 부족하지만 행동은 많이 부족하지 않을게.

더 멋진 남자친구 되어가는 거 바라봐줘.

이미 너무 밝게 빛나는 너의 옆에 내가 가서 같이 빛날 수 있게 해보자.

그렇게 우리 닮아가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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