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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걷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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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턱"

 

요란하게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마스크 위로 드러난 얼굴만으로도 그녀의 매력은 흘러 넘친다. 황홀하게 기쁘다. 그런 그녀와 오늘 행궁동에서 데이트를 한다. 이미 손을 잡았던 터라 당연히 한 손엔 가방 한 손은 비워뒀다.

 

'왜 망설여?'

 

잡을까 하다가 애매하게 멈춰버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버린다. 어색해서일까 혹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한 것 때문일까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은 손을 잡아버린 후에 하기는 늦었다. 꿈에 그리던 그녀가 나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몇 번을 봐도 더 보고싶은 그녀의 미모에 칭찬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평범한 연인들처럼 오늘은 우리도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함게 있을 수 있는 것이 평범해진다는 게 너무나 특별하다. 매번 만날 때 마다 어떤 옷을 입을 지 어떤 향수를 뿌릴 지 고민한다. 나는 그런 타입이다. 그녀에게 편해지는 순간 한 없이 편해질 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 

 

연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와 거리가 있는 상태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좋다. 어쩌면 그렇게 불편한 것은 연애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게 내가 생각한 어른의 연애이다. 이렇게 생각은 해도 시간이 지나면 개과인 나는 그녀에게 길들여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게될 수도 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하자. 

 

일주일 전 부터 골라 둔 덮밥집으로 향한다. 만난 시간이 브레이크 타임 직전이라 불안하지만 상관없다. 식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으러 왔다는 것이 중요한 지금이다. 시간이 늦어 더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똑 부러지는 그녀는 바로 근처 식당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런 그녀가 좋다. 

 

나는 이런 결정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그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나를 보안해 줄 수 있을 만큼 결단력있고 추진력이 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 우리가 만났던 그 종합설계 수업에서부터 그녀는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고 자신의 역할도 미리 정해두었다. 멋진 여성이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데려간 이탈리안 식당에서 서로 마주보여 아직은 어색한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화를 한다. 알아가야 할 것이 많은 우리다. 대화가 끊길까 조바심도 나고 소소한 재미를 놓칠 수 없기에 애드립도 충분히 생각해 두어야한다. 그러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끌고가며 나와 그녀의 취향을 공유한다. 음식, 옷 스타일, 취미 등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몇 번이나 해도 질리지 않는 과거 이야기들도 함께 한다. 나에게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것, 내가 그녀에게 나에대해 말해주는 것을 통해 서로에 대해 조심스레 배운다. 일종의 훈련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너는 이런 사람이다를 인식시켜주는 것.

 

이야기를 계속 할 수록 그녀는 새롭다. SNS속 수 많은 팔로워나 친구 중 하나였던 내가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녀를 만날 때에 알 수 없던 그녀의 귀여운 모습, 아기같은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보이는 그대로인 사람이라 사람들이 나에게 놀라는 것은 내가 오토바이를 탄 다는 사실 정도? 그것을 제외하고는 보이는 이미지가 나인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가기 힘든 사람, 도도한 사람, 똑 부러진 사람 이라는 이미지를 대부분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외인 귀여운 모습을이 어색하면서도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사실은 많이 생략되어있는 그녀와 나의 연락속에서 그녀는 심장폭행러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어제 밤엔 잠이 안와서 계속 연락한 기록들을 돌려보며 적응하느라 혼났다.

 

나만 보고싶다 그 모습. 욕심이 날 것 같다. 

 

밥을 먹은 우리는 근처의 셀렉트 샵으로 향했다. 내 취향의 가구들로 인테리어를 한 셀렉트 샵에서 최근 집에 인테리어 겸으로 피우기 시작한 향초를 팔기 때문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간다. 손은 놓지 않는다. 당연하게 잡고 있어야한다. 내게 향초를 선물해 준 마음이 너무 좋다. 그녀가 내게 준 첫 선물이라 아까워서 잘 못쓸 것 같다.

 

날이 좋아서 그녀와 걸어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걸어가는 동안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여유롭고 차분한 척 하지만 사실은 고집있고 주장이 강한 편이라 힘들 수 있다는 것. 싸우고 나서 풀어주는 법을 잘 몰라 많이 답답할 수 있다는 점. 때로는 이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등 그녀가 나에 대해 실망하게 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었다. 나중을 위해서 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싸움을 준비하는 전투사같았던 것 같다. 현명한 그녀는 왜 벌써 싸울 것을 생각하냐며 다른 주제로 전환한다. 

 

노을이 시작되는 시간 그녀는 내가 오후 5시의 느낌이라고 했다. 생기발랄한 느낌보다는 노곤한 느낌이라는 것이겠지. 나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아 마음이 좋다. 그녀는 12시 30분의 느낌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분주하고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이 딱 그녀의 이미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들러 영문 책을 몇 권 사고 그녀와 함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책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그녀의 취향은 역시나 스릴러. 여성스러운 외모에 멜로소설 같은 것을 좋아할 법 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쪽같은 그녀이다. 서로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고 받은 우리는 카페에 들러 잠시 또 이야기를 나누고 코인 노래방으로 향한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압살당한다. 역시 노래부를 때 더욱 빛나는 그녀다. 남자놈들과 노래방에가서 발라드만 불러 제끼는 나와는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9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밖으로 나와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기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 보내기 싫지만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 집으로 데려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혹시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할까 걱정도 된다.

 

'오빠 집으로 가서 맥주라도 한 잔 할까?'

 

현명하다. 정말 현명하다. 현자가 따로없다. 기쁘게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평소 11시면 피곤함을 호소하는 그녀이기에 걱정이 된다.

 

'집에 언제 가야해..?'

'음..막차 타고 가면 돼~'

'본가로 가는거야? 자취하는 곳으로 가는거야?'

'음 집에는 오늘 다시 자취하는 곳으로 간다고 했어! 상관없어 그래서'

 

상관 없다는 말이 혼란스럽다. 어떤 게 상관 없다는 건지 내 맘대로 생각하고 싶어진다. 일단은 눈 앞에 맥주가 있으니 조금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손을 잡고 나에게 기대기도 나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편안하게 나와 우리집을 즐기는 그녀가 있으니 나도 마음이 편안하다. 

 

'자고 갈래..?'

'...'

'자고가'

 

속삭이듯 그녀를 유혹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당당하게 나는 절대 나쁜 짓을 안한다는 사람처럼. 맥주를 한 캔 정도 더 마셨나보다. 

 

'차라리 지금 편한 옷을 줄래..?'

'어 그럴까?'

 

혹시 마음이 바뀔까 냉큼 달려가 옷을 꺼내준다. 내 옷을 입어 조금은 헐렁한 상의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 가만히 내 어깨에 기댄 모습이 너무 귀엽다. 내일 야간에 출근을 하는 날 위해 새벽까지 같이 깨어있어 준다고 한다. 내가 괜히 출근 전 날에 몸을 맞춘다는 걸 이야기해 버려서 그녀가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침대에서 자도 된다고 말해준다. 물론 나는 소파에서 잘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피곤함을 이겨내며 대화를 하는 그녀가 너무 힘들어서일까 샤워를 하겠다고 한다. 샤워를 하면..난 뭘 해야하는거지. 정신차리자.

 

샤워를 하고 온 그녀 젖은 머리카락과 맨얼굴이지만 미모는 여전하다. 내 화장품을 사용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마치 오래된 연인사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인 것만 같아서 이것이 행복한 우리 미래의 아주 작은 부분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맨 얼굴로 나와 있어도 여전히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놀리는 모습, 맨 발이 부끄럽다며 담요로 숨기는 모습, 그런 모든 행동을 하면서도 내 옆에 붙어있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

 

시간은 흘러 새벽 세시가 조금 넘었다. 

 

'들어가서 자도 돼. 나도 이제 잘거야'

'정말..?'

'그래 정말. 들어가서 자~'

'오빠는 여기서 자?'

'어 나는 여기서 잘게'

'같이 자자'

'..같이 들어가서 자자 그럼'

 

진짜 나쁜 마음은 없었다. 아직까지도. 집주인인 내가 밖에서 잔다는게 마음에 쓰였겠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 침대에 나란히 누우니 오히려 잠이 안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게 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터치하며 장난도 치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누워있기도하면서 우리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꾸만 얼굴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하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앞으로는 어떨 것 같은지 그러면서도 침묵이 찾아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몸은 한 없이 가까워져 가만히 있어도 그녀의 살결과 숨결이 느껴지고 고개를 조금만 들면 그녀와 내 얼굴이 닿을 수 있었다.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녀와 입을 맞췄다. 

 

'...'

 

잠시 아무말도 없던 그녀가 다시 나의 입을 맞췄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나느 굳었던 표정이 돌아왔다. 혹시 그녀가 기분나빠 할까 걱정돼 저질러놓은 입맞춤을 후회해야하나 고민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교대 근무인 나 때문에 오늘 보고 다음에 보기 위해서 2주간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이기에 더 많은 추억을 남겨둘 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어질 것도 알고 있었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손 잡았으면 끝이지~'

'응?'

'손 잡았으면 사실 말 다했지!'

'ㅋㅋㅋㅋ그런거야?' 

'응!'

'그래 오늘이 몇일이지. 기다려봐 물어볼 거 있어. 괜찮아? 괜찮겠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면 그녀도 나도 지금의 이 설레임에 취해 섣불리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후회없게 만들자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괜찮지 않을 그녀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마도 내가 그녀의 생각보다 빠르게 손을 잡아버려서, 입을 맞춰버려서 그녀가 나를 배려해 준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만남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계속해서 입을 맞춘다. 몸은 더 가까워지며 서로가 있음에 감사한다.

 

아침을 맞이 한 우리는 피곤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분명히 부어있을 내 얼굴이 걱정 돼, 일어나자 마자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붓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12시가 다 된 시간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니 노곤함이 찾아온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 내 팔에 기댄 그녀가 새근새근 잠에들고 나도 잠에 빠진다. 밤새 긴장을 하고 잤을 게 분명한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기댄 채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단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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