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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집에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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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로링~

 

아침에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벌써부터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교대근무를 하는 탓에 몸은 누구보다 힘들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집에 먹을 음식도 간식도 충분히 채워뒀고 청소도 나름대로 깔끔히 해 두었다. 가장 중요한 건 오늘아침엔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 근무가 일정하지 않아서 우리는 종종 평일저녁에 만난다. 서로가 살고있는 집 사이의 거리도 꽤 멀어서 자주 볼 수 없기에 내가 쉬는 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녀를 맞이하며 한 시간 반 이라는 거리를 달려간 나는 힘든 것은 다 잊고 오롯이 그녀에게 집중 할 수 있게 된다. 같이 저녁을 먹고 못 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시 서로의 취향을 알아간다. 나는 이런 편안한 느낌이 좋다.

 

오늘은 주말을 맞이하여 그녀가 우리집에서 기다려줬다. 어제 밤 근무를 나간 나 대신 우리 집을 지켜준 요정이었다. 나 없이 내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마치 집에 귀여운 반려동물을 놔두고 출근하는 기분이랄까?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 어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깊었다. 

 

예민한 그녀는 내가 조심한다고 열어버린 방 문의 기척에도 깨버렸다. 그러고는 이내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부스스한 그녀의 모습이 나의 아침 모습과는 다르게 세상 아름답다. 화장을 하고 잔 줄 알았다. 이럴 수 있나 이게 사람이 맞나.. 너무 팔불출인것 같기도 하고.

 

잠을 안자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전의 경험에 의해 잠을 자지않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실제로 내가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호기롭게 잠을 자지 않고 하루를 버텨보려했는데 오후 두시 쯤 머리가 굉장히 아파서 머리를 쥐어짜며 침대에 누워 다음날 새벽 6시에 일어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그녀를 두고 잠에 들까 걱정돼 어쩔 수 없이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한다.

 

'일어날 시간이야!'

 

네 시간 정도 흐른 것 같다. 침대로 달려와 부어버린 내 얼굴 바로 앞에 갸름한 그녀의 얼굴이 있다. 눈만 떠도 알 수 있는 얼굴이 부었다느 느낌에 황급히 얼굴을 가려보지만 귀엽다는 듯 내 얼굴을 감싸쥐는 그녀의 손에 가리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중에 내 부어버린 얼굴을 본 콩깍지가 벗겨진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걱정되기도 한다.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바로 씻고 나와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옆에 찰싹 붙는다. 얼마나 꿈만 같은 하루가 시작될까 기대된다. 편안한 옷을 입고 있는 그녀와 앉아 손도 잡고 그녀의 어깨에 기대기도하며 나의 애정을 과시한다. 얼마 전까지 나는 여유있는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당장 이렇게 옆에 붙어있으면 참을 수가 없다. 개같은(?) 성향인 나는 계속해서 치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아무리 절제해도 이정도는 어쩔 수 없다. 혹여 귀찮아하더라도 지금은 못 참겠다.

 

'아침은 잘 먹었어?'

'샌드위치 맛있던데'

 

이런 사사로운 대화를 하는 게 즐겁다. 마치 같은 집에 사는 우리인듯 당연한 아침 점심 저녁 먹거리를 고민하고,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는 게 즐겁다. 그렇게 점심을 정해두고 그녀는 내 품에 안겨 그렇게 한참을 따뜻함을 느낀다. 안고만 있어도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운 지금이다. 

 

밥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찾아온다. 본능에 몸을 맡겨 침대로 들어가 또 다시 서로가 가장 편안한 포지션으로 서로에게 붙어있는다. 누구의 다리가 위로 갈 것인가 너의 손과 나의 손은 어디로 갈 것인가. 조금은 응큼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극세사 이불은 조금만 지나면 몸을 따뜻하게 뎁혀주고 그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입을 맞추고 서로의 기분을 말하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밖에는 비가온다. 오늘의 저녁은 막걸리와 감자전 김치전으로 정했다. 막걸리를 사러 나가기 위해 내 후드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인다. 누가봐도 커 보이는 저 옷을 입고 맨 발로 편의점을 향해 나가는 그 모습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윽..심장. 

 

술은 항상 내 차지다. 술이 약한 그녀는 술만 마시면 졸음이 쏟아지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마셔주는 수 밖에. 감자전과 김치전에 대한 아마추어 맛 평론가 둘의 대화가 오가며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꼭 붙잡은 서로의 손을 놓은 수는 없다. 

 

'이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어??'

'음..이전 사람들..?'

'응'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잘 하지는 않으려 했었다. 나의 이전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다 지난 일이지만 많이 알 수록 독이 되는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많이 알게 될수록 스스로가 힘들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 대해 많이 알아야 우리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타입인것 같다. 그런 점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건지, 술의 힘인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지난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던 그녀. 담담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해 주는 모습이 나에게도 안심이 되었다. 나를 위해 애써 담담히 말해주는 그녀였는데, 나를 만나기 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랐다. 

내가 너무 서두른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너무 행복해서 당연히 그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이 좋아하니까 그녀도 나를 많이 좋아할 것이고 이전의 사람쯤은 당연하게 내가 다 지워줬을 거라는 자만심이었다. 이야기를 차마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을 보이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바보같은 내가, 더군다나 이런 질문을 여러번 아니 수십번은 생각하고 했어야 하는 내가 생각없이 질문을 던진 게 후회된다. 

 

'괜찮아. 그만해도 돼'

'...'

 

아무말 없이 내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감추는 그녀에게 더 미안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말이라는게 부끄럽다.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 더 많이 반성하고 절제하고 성급해서는 안된다. 멍청하게 굴지 말고 여유있게 기다리자. 확인받고자 하는 마음은 나이를 먹어가더라도 쉽게 줄어들지는 않는가보다. 어렵지만 그걸 잘 참아볼 생각이다. 앞으로는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야지.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음..오빠의 이전 이야기'

 

눈물까지 보인 그녀 앞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지난 실수들을 그리고 지난 사람들을.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것 처럼 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나를 조금은 더 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하려 애썼다.

 

어려운 이야기들을(?)마치고 다시금 우리는 평소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쉽사리 잠이 들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야간 근무를 하고 4시간 밖에 잠을 자지못한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다.

 

슥슥- 더듬더듬

 

'어?'

 

잠에서 깬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있어야 할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새벽 네시. 나는 정말 안좋은 생각들을 했다. 밥을 먹으며 했던 이야기들이 화근이 되었던 걸까. 혹시 내가 무언가 더 큰 실수를 해서인지 집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하며 조심스레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음...'

'왜 여기에서 자.. 내가 너무 시끄러웠어?'

'잘 자더라'

 

피곤했던 탓일까. 평소 비염이 있는 내가 피곤함과 시너지를 발휘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나보다. 예민한 그녀는 내가 잠에 들자마자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불안한 감정들은 사라져갔지만 나를 위해서 우리 집에 와준 그녀를 이렇게 힘들게 한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침대에 가서 편안하게 자~'

'응 가서 같이 자자.'

 

같이 잘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미어졌다.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며 긴장하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그리고 이불도 덮지 않고 소파에서 겨우 잠든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조금씩 흘렀다. 무책임한 내가 너무 싫더라 오늘은. 가만히 앉아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나 어느샌가 앉은 자세로 잠이 든 내 앞으로 그녀가 나왔다. 

 

'왜 앉아서 자~'

'그냥 잠이 안와서.'

 

사실은 다시 침대로 가면 또 그녀가 깰 것 같았고, 소파에서도 누우면 코골이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미안함이 너무 커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 와주니 눈물이 맺혀 눈을 피해 고개를 푹 숙여서 피곤한 척 했다. 긴장하자.

 

아침일찍 출근을 해야하는 그녀는 씻고 나는 그녀에게 줄 간단한 아침들을 준비했다. 이런 서투른 나에게 와준 그녀가 너무 고맙다. 조심히 출근해~ 오늘도 고마워. 나 때문에 많이 피곤하고 힘들겠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내가 더 잘 할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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