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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래도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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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빠르게 씻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바로 오늘 그녀를 위한 선물을 배송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다가오는 쉬는 3일이라는 여유에 젖어 자기 전 TV도 보고 휴대폰도 보면서 아침 9시~10시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자고 일어나면 오후 4시~5시 사이인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던 나였다. 오늘의 기상 목표는 오후 2시이다. 최소한의 잠으로 하루를 이겨내 보자. 

 

잠들기 전, 그녀에게 줄 가구를 넣을 박스를 찾아본다. 둘러보니 적당한 사이즈의 박스가 하나 있긴 한데, 오뚜기 밥이라는 글자가 너무 강렬하게 쓰여있어서 고민이 된다. 급하게 집에 있는 A4 사이즈의 종이들로 덮어보려고 시도하지만 종이를 뚫고 나오는 강렬함에 결국 다 떼어버린다. 

 

일어난 이후의 계획을 머리속으로 생각하며 잠에 든다.

 

깨어보니 1시 50분이다. 계획대로 최대한 바로 씻는다. 비몽사몽 한 얼굴을 보니 큰일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마사지를 해 줘야겠다. 얼굴이 부어있을 것을 계산하지 못하다니 실수다. 오늘따라 더 많이 부어있는 얼굴을 비벼가며 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옷을 고른다. 미리 정해둔 깔끔한 코디로 후다닥 입고 오뚜기 밥 박스에 담겨있는 가구를 들고 집에서 나온다. 옷을 골라 입을 때까지만 해도 '뭐랄까 오늘 좀 괜찮군' 하는 마음이었다면 오뚜기 밥을 든 내 모습은 지하철의 오뚜기 밥을 가지고 타는 자취생일 것만 같다. 

 

지하철에 타기 전 전에 퇴근하면서 봐 둔 꽃 자판기를 향해 간다. 집 안에 둘 작은 꽃으로 골랐다. 인테리어 용으로 쓸 수 있게 시들지 않는 조화로 선택한 게 잘한 것일지 모르겠다. 일단은 출발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선물이지만 전달해 줄 때의 그녀의 표정이 어떨지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벌써 예쁘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오뚜기밥 박스를 든 멀쩡한 옷을 입은 자취생이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스러워하며 더욱 조심히 박스를 옮긴다. 마치 박스 안에 비둘기라도 숨겨둔 것처럼 조심조심 내려놓고 들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뚜기 밥을 홍보하며 도착했다.

 

오뚜기 밥 박스를 든 나를 멀리에서부터 알아보고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가 보인다.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게 에어컨 광고를 보는 듯하다. 

 

'와 꽃은 언제 샀어~'

'하핳 별거 아냐'

 

밝게 웃으며 다가온 그녀가 꽃을 확인하고는 더욱 기쁜 눈웃음을 보낸다. 이 맛에 선물한다 진짜.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미모는 숨겨지지 않는다. 이제는 내 팔을 꼭 껴안는 게 많이 자연스러워진 그녀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오 잘 어울리네'

'그러게 다행이다'

 

투명색 유리를 올려둘까 하다가 화이트 색깔로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한 집안 분위기에 내가 준 가구 위에 내가 준 향수가 턱 올려져 있는 게 아주 맘에 든다. 왠지 아끼는 아이들을 올려놔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작은 화장 대위의 선반에 아낄 것만 같은 향수를 둘 다 내가 줬다는 사실이 참 내가 봐도 내가 잘했다. SNS에 자랑까지 해주는 그녀를 보니 참 고맙다.

 

 밥을 먹기 위해 근처 역으로 이동한다. 마침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예쁜 그녀의 사진을 찍어줘 본다. 사진은 항상 어렵다. 나름대로 자연 속에서 찍어주는 사진에 대해 자신이 있는 나였는데 도심은 항상 어렵다. 내가 찍었지만 배경이 맘에 들지 않는다. 눈에 많이 담기로 한다. 사진을 뒤로하고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식당에 웨이팅을 1시간 30분 이상 해야 한다니 배가 고픈 우리는 다른 식당을 알아보기로 한다. 결국 둘러보다가 근처의 중식당으로 향한다. 배가 고픈 그녀를 빨리 달래줘야 한다. 먹을 것들을 재빠르게 주문한 뒤 이제는 익숙해진 서로의 손을 잡는다. 

 

'예쁘다 봐도봐도 예쁘다'

'고마워'

 

이전보다 덜 부끄러워한다. 확실하다. 예쁘단 말을 자주 해서 질려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직은 걱정하기 너무 이른 것 같다. 계속 들어도 좋은 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짜로 예쁜 그녀가 내가 예쁘다고 말을 하면 더 예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내 손을 때리기도 쓰다듬기도 하며 그녀는 나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진다는 게 위험할 수 있다. 익숙하면 편안하고 편하다. 많이 알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반면에 익숙하다 보니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녀를 만날 때에 많은 것들을 절제하려 한다. 너무 빠르게 그녀가 나에게 편한 존재가 되는 것이 싫어서. 항상 아끼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노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다 처음에는 아끼고 소중했던 것들인데 매일 보고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당연하게 먼지가 쌓여도 가만히 두는 것처럼 노력하지 않으면 방치된다. 사실 모든 연인들이 말하는 권태라는 것이 편해지는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그녀 또한 겪었을 그것을 이제는 최대한 멀리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더 노력하고 싶다.

 

그녀는 나따위가 방치하기에는 많이 걱정되고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너무 편해진 우리 사이가 나를 그녀를 방치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하고 경계한다. 그녀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내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반대로 나는 그녀 앞에서 마냥 편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남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조금 쌀쌀한 날씨에 밥을 먹고 우리는 빵과 마실것을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는 건 항상 기대된다. 그녀는 집 밖에서의 스킨십을 힘들어한다. 그렇기에 나는 보자마자 와락 안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하고 길을 걷다가 와락 안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맞춰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는다. 이 모든 참아낸 마음을 집에 들어가는 순간 해방시켜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항상 설렌다.

 

수많은 포옹과 입맞춤을 이겨낸 그녀와 후식을 즐긴다. 이미 밥을 먹고왔지만 맛있는 빵이 앞에 있으니 참을 수 없다. 식당을 찾느라 꽤 많이 걸어 다닌 그녀를 위해 마사지를 해준다. 나에게 다리를 맡기고 편안히 쉬고 있는 그녀가 참 귀엽다.

 

나는 손과 발이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녀는 정말 예쁘고 가느다란 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부드럽고 그 손으로 자꾸만 나를 여기저기 만져주는게 정말 좋다. 또한 발도 참 예쁘다. 내가 빤히 쳐다보면 부끄러워하지만 정말 예쁘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한테 와줘서 참 다행이다. 다른 사람에게 있으면 계속 질투 났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혼자인 때에 그녀의 SNS를 훔쳐보며, 이런 사람과 만나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을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취한 우리는 같이 양치를 하고 같이 취침준비를 한다. 이런 작은 것들을 같이 하는 게 마치 신혼생활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웃음이 난다. 그녀는 자연스레 내 옆에 눕고 나도 그녀의 옆에 눕는다.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춘 뒤, 서로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더 따뜻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에 든다.

 

'언제까지 잘거야~'

 

아침잠이 없는 그녀가 나를 깨운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얼굴이 그녀라는 게 너무 좋다. 분명히 퉁퉁 부어버린 얼굴일 텐데도 웃으면서 쓰다듬어주는 그녀의 손길에 감사하다. 어제 먹고 남은 탕수육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소파에서 그녀의 품에 기대 눕는다.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손길이 좋다. 그녀에게 나는 그녀만의 살 냄새도 좋다. 언제 바라봐도 웃으면서 나를 봐주는 그녀가 좋다. 그렇게 계속 안겨서 노래도 듣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다 보니 소파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침대로 이동한다. 서로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넓은 침대는 필수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배도 부르니 다시 잠이 온다. 그녀를 코골이로 고생시킨 경험 때문인지 신경이 쓰여 자고 일어났지만 피로가 남아있었다. 그녀도 옆에서 자는 내가 신경 쓰여 제대로 피로를 풀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침대에 누워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잠이 든다. 

 

오늘은 햇살이 참 따스하다. 

약속이 있어 나갈 준비를 하는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그녀는 거침없이 나갈 준비를 한다. 

...

그래도 그녀가 좋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녀를 보내주며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부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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