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녀의 취향

728x90

'오빠는 어떤 게 좋아?'

 

그녀가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사실 아직까지는 그녀가 나에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 내가 너무 부담스러울까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연예인이기에 나에게 물어봐 주는 저 질문들 하나하나에 나는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똑같은 질문을 다시 물어본다. 아주 여유있는 척 하면서 말이다. 사실 대단한 질문들은 아니어서 그냥 물어보면 어떤가 싶으면서도 마치 첫 연애를 하는 소년처럼 28인 나도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2살밖에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오빠 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존재이기에 그 부담은 배가 된다. 

 

오빠라는 말은 사람을 바꾸는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철없는 아이이더라도 오빠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나는 뭔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만 같고 여유를 잃어서는 안되며 때로는 결단력있게 때로는 위트있게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지는 전혀 모르지만, 어쩌면 그렇게 안느끼는걸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지만 모르는 척 하련다. 그렇게 모르는 척 여유있는 척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어떤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는 지 잠은 언제 자는지. 연락이 편해지니 조금은 귀여운 이모티콘도 사용하게 되었다.

 

'오구(이모티콘) 귀엽지. 역시 사람은 닮은 것에 끌리나봐.'

'에이 오구는 너무 귀엽지 나보단. 아 혹시 눈 말하는건가 점 하나 찍혀있긴 하네'

'오 눈치빨라~.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무쌍을 좋아해요. TMI였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다. 이건 뭘까 하면서도 마지막에 덫붙인 TMI였습니다가 내심 마음에 걸린다. 이건 뭐지 내가 김칫국 마시는걸 들킨건가. 선 넘지 말아주세요 라는 표현인가 하면서 마음을 졸이지만 한 편으로는 내 눈이 작은 무쌍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완전무쌍이라고 들어보셨나요.'

'ㅋㅋㅋㅋㅋ나중에 아이라인 그려보자!'

'쉽지 않을텐데. 아이라인 새로 사야할 걸?'

 

올레. 드디어 그녀가 나와의 나중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엄청난 혁신이다. 침대를 힘차게 두드리며 답장을 보냈다. 현재 시간 08시 27분 그녀를 만나고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 최대한 늦게 자고 빨리 일어나서 다시 연락을 하고싶다. 멀리서 보면 하나도 재미없는 이 이야기들을 어쩌면 그녀와 나 둘이서 혹은 나 혼자서만 엄청나게 즐기고 있다. 

 

'잘 때 반팔입어?'

'거의 항상 그렇지'

 

나중을 생각한 그 연락 이후로 다시 계속해서 취조모드이다. 내가 너무 질문을 하지 않는 탓에 그녀는 거의 경찰서에 취직한 듯이  질문을 만들어낸다.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는 그녀가 최근 돌아온다는 싸이월드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에 젖어드는 대화를 한다. 버디버디와 싸이월드 그 때의 그 감성. BGM은 뭐였는지 아이디는 뭐였는지 수많은 'ㅋ'과 함께 우리의 연락은 이어진다. 이어진 인터넷 소설 이야기로 또 다시 수많은 감성문구로 우리의 카톡은 채워진다.

 

'고등학생이 술마시고 담배피고 오토바이타는데 너무 재밌다.'

'역시 나쁜남자에 끌리는건가'

'소설은 그렇지만 현생이라면 나쁜남자 안만나. 난 다정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좋아.'

'그치 현실에서 나쁜사람 만나면 고생이지. 착한사람을 만나야해 예를들어...'

 

수 많은 고민을 했다. 나라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유머인척 하고 보내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아닌 척 다른 유명 연예인이름을 대버렸다. 그래 나중에 이불킥 할 뻔 한 카톡하나를 잘 지워냈다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스릴러, 추리 같은 장르를 좋아한다. 여리여리하고 도도한 외모라서 당연히 멜로쪽을 좋아할 줄 알았던 그녀였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영화는 시간이 아까워서 잘 안본다는 말을 듣고 충격이었다. 사실 나는 멜로드라마 멜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본다. 액션도 좋지만 대부분의 명작이라는 영화들은 멜로이니까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최애 장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 그녀는 11시부터 언택트 예배를 드린다. 무교인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와의 카톡을 돌아보고 돌아본다. 혹시 실수 한 게 있는지. 그리고는 매일 보는 인스타그램으로 그녀의 피드를 살펴본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예쁜지 참... 매일 봐도 새롭다. 그럴 때 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녀는 오늘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고 한다. 나는 오늘 밀린 운동과 공부를 해야겠다. 하지만 연락이 끊기지 않아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이건 하소연이 아니라 현재 내가 그녀밖에 안보인다는 말이다. 후 사실 공부나 운동 조금 안하면 어떤가 연락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헬창도 아니고 수험생도 아닌데 어때라는 생각이 지난 1년 누구보다 꾸준히 해온 내게 박혀버린다. 

 

'친구 만나고 집가기 전에 놀러가도 돼?'

'어서와'

 

하나도 여유롭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확신을 해 버린것 같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약속도 없이 나를 보러 우리집 앞으로 온다고 하는데 누가 마다할거고 누가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겠는가. 빠르게 답장해서 그녀가 후회하지 않게 해준게 나의 최선의 배려였다.

 

그날 저녁 다섯시쯤 그녀가 도착했다. 도착 전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집청소를 해 두었다. 아 큰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배터리가 없다는 그녀가 충전을 해도 되냐는 좋은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응한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건 아니고..

뭐 전부터 서로의 인테리어에 대해서 많은 말을 나눈 상태라 집구경을 시켜준다는 핑계거리도 충분했다. 

 

긴장하며 집으로 들어온 그녀에게 집을 하나하나 구경시켜준다. 휴대폰 충전을 하면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는가 집 구경이나 하는거지 이건 변명이 아니다. 그렇게 방을 하나하나 다 구경한 후 은근히 소파와 침대를 자랑해 둔 덕에 그녀가 소파에 편히 앉아있는다.

 

'피곤해? 자려는 것 같아.'

'아냐 조금 피곤해서 그래'

'침대에서 누워있어도 돼'

 

정말 배려하는 말이었다. 나쁜 마음은 1도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 눕는다. 흠흠 여자친구가 생기길 바라면서 퀸사이즈 침대를 비싼 돈 주고 사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받은 좋은 이불속에 그녀가 쏙 잠긴다. 너무 귀엽다. 그녀를 위해 이 방이 존재하는 것 처럼 그녀만 보인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있는 이 상황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좀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그녀와 계속 대화한다. 할 말이 없어도 괜찮다. 피곤한 그녀는 조용해지면 자연스레 눈을 감고 나는 그녀가 다시 눈을 뜰 때까지 다른 이야기거리를 생각해내면 된다.

 

너무나 이상적이다. 옆에 가서 눕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혹여나 지금의 욕심이 나중을 사라지게 할까 두려워 가만히 기다린다. 바라보기만해도 지루하지가 않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눈을 보는 것 같다. 정말 눈이 예쁜 그녀다. 생각보다 털털한 성격에 처음 와 보는 남자의 집 침대에서 눈을 감고 아이처럼 자고있다. 작은 고양이가 자는것 같은 기분이다. 몰래 바라보며 눈을 뜰 타이밍에는 나도 눈을 피해야한다.

 

사실 우리집에 데려온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3시간 정도 대화만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게 제일 재미있었고 무척 긴장했던 것 정도만 기억난다. 그렇게 3시간정도 이야기를 하니 점심 이후로 밥을 먹지 않은 나는 배고픔을 느끼고 결국 꼬르륵 소리를 방출해버린다.

 

'배고파?ㅋㅋㅋㅋㅋㅋ'

'으..응..간단히 뭐 먹을까?'

'좋아'

 

드디어 매력발산 시간이다. 하필 재료가 많이 없기는 하지만 항상 소고기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는 준비정도는 되어있기 때문에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스테이크와 토마토 카프레제이다. 와인까지 사뒀어야했는데 참 아쉽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향신료도 충분하고 최근 구입한 바질페스토와 발사믹소스까지 나의 어깨를 올려주기에 충분하다. 

 

요리를 하는 나의 모습을 자꾸만 쳐다보면서 웃어주는 그녀때문에 도무지 표정관리가 안된다. 너무 예쁜 얼굴로 쳐다보는건 정말 반칙이다. 나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하는데 그녀는 마치 장난처럼 웃고있는게 느껴진다. 제발 맛있어라 기도를 하며 상 위에 요리를 둔다. 

 

'맛있다.'

'다행이다..'

 

정말로 맛있었는지 모르지만 왠지 그녀는 맛없다는 말도 잘 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던 나다. 밥을 먹고 나니 어느새 10시가 가까웠다.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그녀이기에 저번 만남처럼 아쉽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해본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도 계속 여기에 남고싶다고 답해준다. 뭐랄까 이제는 조금씩 확신의 눈빛을 보내보기도 하며 이 상황을 즐길 수 있겠지만 아직은 너무 부끄러워서 눈도 잘 못 맞추는 나다. 바보같은 놈. 돌아보니 이때 이미 뭔가 결정이 되어있을 수 있었겠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에 또 한번 깊게 생각해보니 성급한 것은 독이 되었을 수 있다. 걱정되는 부분은 꼭 진짜 만남을 시작하기 전에 잘 이야기를 해 보리라 생각한다. 

 

아쉬움을 남기고 그녀를 바래다준다.

 

'조심히 가 ' (하이파이브)

' 조심히 가아~'

 

하이파이브라니 이건 우리가 많이 가까워졌음을 그녀가 인정해주는 도장같은 건가? 나 인정받았다. 다음 만남엔 선물이라도 줘야하나 인정해 준 보답으로 나를 가질 수 있게..흠흠 진정하자.

 

'나도 거기에 있고 싶어..'

'여기 있으면 너무 좋았을텐데 아쉽네'

'그러니까..ㅠㅠ'

'너무 늦게 보내서 미안하네 집가면 12시겠다.'

'내가 가기싫어서 안 간건데 뭐~'

 

하...심장진짜 너무 아팠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불쑥불쑥 진짜 타고났다. 이러니 내가 정신을 못차리지. 빨리 설 연휴가 오면 좋겠다. 원래 만나기로 한 날은 설 연휴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미리 만나게되어 영광입니다.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

 

다음 주 연휴를 기다리며 오늘도 카톡으로 그녀를 재운다.

728x90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센스있는 남자친구  (0) 2021.03.09
집에 가고 싶어  (0) 2021.03.05
걷기 좋은 날  (0) 2021.02.25
날씨가 좋아서  (0) 2021.02.22
그녀와의 첫 만남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