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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녀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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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언제 사줄거야~?'

 

장난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말투로 연락이 왔다. 2년 전 졸업을 한 뒤 간단하게 인스타그램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던 우리에게 구체적인 약속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취업을 했다는 사실과 화이트 톤으로 집을 꾸며냈다는 간단한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서로간의 감정이나 근황을 나누는 대화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기대감에 가득차 있기도했다.

 

'이제 안바빠? 언제 시간 돼?'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조금은 위트있으려고 노력을 했다. 이런 대화쯤 당연한 사람처럼 절제하며 한 줄의 답장을 보내기 위해 지우고 또 지웠다. 2주 후면 설연휴이기에 연휴 마지막 날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평소처럼 우리의 대화가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항상 바쁘고 인기가 많던 그녀였기에 친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종종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소중한 사실이었고 그런 날은 특별한 하루라고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때? 일은 할 만 해?'

 

당연하게 연락을 마무리하려던 나에게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였다. 나의 생각이나 기분에 관심을 준 것은 처음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질문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성급해 보여서는 안된다. 최대한 단정하고 여유있게.

 

'늘 비슷하지. 그쪽은 어때?'

'같은 업계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것 같네~. 우리 졸업작품 같이 할 때 생각난다 그때 오빠들이 나만 두고 다 바빴잖아..'

'아침 점심 저녁 다 사줄까? 간식도 먹고싶겠다 야식도 말만 해!'

 

조심스레 장난도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은근히 나는 시간이 많다는 어필도 동시에 해버렸다. 괜히 오버하는 것 거처럼만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갑나기 나에게 이렇게 연락을 한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살펴봤다. 최근까지 있었던 남자친구의 사진이 모두 삭제되어 있다. 싸우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나를 이용해 그 분의 질투를 유발하려는 건지 혹시 기회가 생긴 것인지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럴만도 한 것이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누가 봐도 예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나는 그녀였다. 대학교에서 밴드 동아리 보컬로 활동을 한 그녀는 노래를 좋아하고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밝은 미소로 끼를 뽐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고백하는 사람들도 수 없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탓인지 평소 모습은 누구보다 도도해보였다. 그렇기에 졸업작품을 같이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하지 않게 그녀와 친분을 쌓았고 간단히나마 한 두 마디의 카톡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하니까 재밌다. 내가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먹고싶은거 다 생각해서 와~ 잘자!'

'응! 잘자고 출근 잘 해!'

 

퇴근을 하고도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나갔고 아쉬운 마무리를 한 나였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그 날 밤은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관계를 추측하느라 잠에 들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는 결론을 정해둔 것 처럼 생각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지만 그걸 아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행복한 밤을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거 항상 너무 힘들다ㅜㅜ' 

 

꿈만 같았다. 사실 꿈도 꿨다. 아침에 일어나니 꿈에서 본 것처럼 연락이 와 있었다. 감격해서 일어나자마자 몇 번이고 확인을 다시 했다. 비몽사몽 할 새도 없이 자기 전에 했던 행복회로를 돌리며 답장을 했다. 잊지말고 여유있게.

 

'자기전에 배게에 일어날 시간 외치면서 자는데도 잘 안되네'

 

아침부터 웃음을 주고자 선택한 나의 문장은 지금보면 보잘 것 없다.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ㅋ"으로 보답해줬다. 오늘 하루 해야할 모든 일은 한 듯이 기쁘고 뿌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연락 할 수 있는 친구정도의 궤도에 진입한 듯 했다. 그렇게 2~3일간 서로의 시간 별 일상을 말해가며 사사로운 농담과 과거 회상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의 약속은 1주일이나 더 남았기에 할 수 있는 건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것 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 이번주에 수원 갈 것 같아!'

'음 그럼 오는 김에 이번 주에 밥 사줄까?'

 

자연스러웠다. 부담을 주지도 않았고 그녀가 먼저 온다고 말을 해 줘서 오히려 수월했다.

 

'그래 그럼 오빠네 집 쪽에서 5시에보자'

'아침 점심 저녁 다 사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알겠어!'

 

속으로 엄청난 환호를 하며 담배를 피웠다. 하 이제 담배도 끊어야하나. 세상 모든 스트레스를 다 날려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녀가 온다니 머리속으로 앞으로 만나면서 여행갈 곳까지 생각해두는 나였다. 하루 종일 우리집 근처의 맛집이란 맛집은 다 찾아봤다. 카페거리에 살기에 소개팅에서 먹을만 한 음식점들도 많고 카페도 충분하다. 소개팅은 아니지만 마음가짐은 그보다 더 결연했다. 날씨와 동선을 생각한 맛집과 카페 선정 그리고 추워할 수 있는 그녀를 위한 소개팅 룩에 목도리 가져가기라는 플랜까지 완벽했다. 

 

약속했던 설 연휴 만남보다 1주일이나 일찍 만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5시가 되기까지 옷만 골랐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만나서 생각하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머리속으로 정리를 하며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을 보니 점심에도 나 아닌 누군가를 만나는 그녀였다. 망했다. 세상 김치란 김치를 다 모아서 그 김칫국을 혼자서 벌컥벌컥 마셨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 시간에 밥을 먹고 오는 그녀를 데리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없었기에 동선을 다시 생각하느라 머리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5시가 다가와서 그녀를 만나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짧은 인사와 함께 웃으며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처럼 서로를 감추고 대화를 이어가며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못마신다는 그녀는 페퍼민트 차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코로나때문에 커피를 마실 때에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기에 조금은 비밀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알아가고 있던 중 차를 마시기 위해서 그녀가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너 진짜 예쁘다'

 

어쩌면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지 모르는 그 말을 생각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해버렸다. 익숙해서인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답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혹시나 내가 너무 빨리 선을 넘은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 말이 조금은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었을까? 대화를 하는 분위기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요즘의 여자분들처럼 MBTI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검사를 진행시켜 진단까지 해주는 그녀가 너무 귀여워보였다. 향수를 좋아하는 나는 향수이야기를 하며 오늘의 향수를 맡게하여 가벼운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시도했다. 출발 전에는 뒤죽박죽인 생각들이 그녀를 만나니 깔끔하게 정리되며 지금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제 밥먹으러 갈까?'

 

주변에 있는 퓨전 한식 레스토랑으로 출발했다. 해가 지니 날씨가 쌀쌀해서 자연스럽게 들고있던 목도리를 장난스레 건네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웃으면서 잘 받아주는 그녀를 보며 목도리에 향수를 뿌려두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닭갈비 스테이크와 생우동면파스타를 주문하고 또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오빠는 왜 헤어졌어?'

 

대학시절 CC를 했던 나와 전 여자친구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녀를 만나면서 내가 가장 신경쓰였던 부분이기도 했던 사실에 대해 빙빙 돌리지않고 정곡을 찔러서 물었던 것이다. 

 

'헤어지는 이유야 많겠지만 크게 보면 하나겠지 잘 안 맞아서. 나도 그래 맞지 않아서 헤어졌어'

 

적어도 1년 6개월이 지난 일이어서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았고 쉽게 그 때의 일들을 꺼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답변이었다. 

 

'맞는 말 하네. 사실 나한테 왜 냐고 묻지 않은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야'

 

그녀는 헤어진 게 맞았다. 그리고 왜 헤어졌냐고 묻지 않은게 내가 처음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오늘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출발했다. 나의 지난 헤어짐에 왜 냐는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나는 바보같다는 듯이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데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말했고,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건 위로가 아니라고 말했기에 나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러한 이유를 말해주고 나니 그녀가 그녀의 헤어짐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 누구보다 도도하고 강해보였던, 누구보다 빛나고 선망의 대상이던 그녀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게만은 약한 사람이었나보다. 많지 않은 연애경험을 가진 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을 찾기보다는 비슷한 나의 경험을 말하는 걸 택했다.

 

나의 경우 연애를 할 때에 항상 약자가 되거나 상대방에서 맞추는 연애를 하는 편이었다. 또한 동물로치면 개 와 같은 느낌의 남자친구가 되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제외하고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헤어짐을 겪게 되면 후유증이 매우 컷다. 다시 혼자인 나로 돌아오는게 무섭고 힘겨웠으며 도저히 삶이 재미없는 시기를 버텨내야 했다.

이런 나이기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니 더 마음이 갔고 그녀의 모든 행동에 대해 수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왜 냐는 질문을 최대한 아끼려고 여전히 노력중이다. 모든 행동에 대해서.

 

식사를 하고 나니 식당엔 말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우리만 남아있었다. 9시면 문을 닫는 현 시국에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가 적당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는다. 1시간 남짓 남아있는 시점에서 어딜 가도 애매하다고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오빠네 집으로 갈까? 어디가도 한 시간밖에 못 있잖아'

 

아차 싶었다. 우리집 앞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바보같았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어제부터 우리집에 들어와 애벌레처럼 담요를 둘둘 두르고 방에서 여전히 티비를 보고있는 친한 형이 생각 난 것이었다. 당장에 짐을 싸서 나가달라고 말하더라도 최소 30분은 걸릴텐데 하면서 오늘은 아쉽지만 간단하게 디저트라도 먹자고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후회한다.

 

'아쉽다 1시간밖에 시간이 없네'

'그러게 나도 아쉽다'

 

혼잣말처럼 뱉은 나의 말에 그녀도 동의해주었다. 흔히 말하는 그린라이트인가를 엄청나게 생각했다. 디저트를 먹으면서도 조금은 진지하고 그러면서 농담을 섞어주는 대화를 하기위해 계속 머리속을 바쁘게 채찍질했다. 종종 내 목도리의 향기를 맡아가며 디저트를 즐기는 그녀를 보며 웃음이 계속 새어나오는 걸 참느라 혼났다.

아쉽게도 시간은 흐르고 9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바래다주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다시 듣고싶어서 아쉽다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말했고 그녀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쉽다는 말로 답해주었다. 

 

버스가 도착하기 5분 전 별로 관심없는 주제들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녀가 말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하기 불편하지 않아?'

'응 불편해'

'카톡해'

'응'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건 분명 좀 더 본격적으로 연락을 하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연락이 끊기지 않을 것이고 계속해서 연락을 하며 나는 또 한 번의 만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1초만에 다 했다.

하지만 바보처럼 웃으면 안되고 여유있고 나도 카톡에 연락하는 여자 한 명쯤은 있는 것처럼 간결하고 여유있게 대답했다. 사실은 각종 기업에서 오는 광고 카톡들이 나의 하루를 채워주지만 말이다.

 

'오늘 재밌었어 또 보자 조심히가'

'응 연락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주는 인삿말에 또 보자를 섞은 나의 설계는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떨리는 마음을 붙들고 집까지 빠르게 뛰어갔다. 이제는 조금은 신경쓰는 듯 한 말투로 조심히 집 가라는 연락을 했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빠르게 그리고 귀여운 말투로 답을 해주는 그녀의 카톡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한 시간 정도 웃고 있었다. 

 

오늘 밤은 다 잤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오늘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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